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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광묵, 채규대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홍주성 전투에서 일제에 항거하다 전사한 채광묵 채규대 부자(父子) 의병을 2016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채광묵은 충남 홍주 매평리(현 충남 청양)에서 당시 문장가로 활약하던 채동식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말 일제 하 홍주지역은 항일 민족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이다.

    1896년 홍주의병은 김복한을 총수로 반개화, 반침략론을 실천에 옮기고자 홍주지역 유생들이 일으킨 반일투쟁이었다. 그러나 관찰사의 배반으로 실패로 돌아가자 채광묵은 상경하여 송수만 등과 도약소를 차리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을 복수할 것을 청하고 외부대신 이완용 등의 탄핵을 상소하였다.

    1901년 8월에는 조정에서 내린 내부주사 직을 국모의 복수를 할 기약도 없는데 영예를 받을 수 있느냐며 강하게 거절하였다. 1904년 일본인 나가모리가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자 김기우 등과 함께 반대 통문을 작성하고 일본 공사를 만나 이를 질타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채광묵은 안병찬 등과 의병을 일으키고 전 참판 민종식을 의병장에 추대하였다. 홍주의병은 홍주성을 점령하고 일본 경찰대를 물리쳤다. 참모장의 직을 받고 항전하던 채광묵은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명령에 따라 파견된 일본군 보병 제60연대의 공격을 받고 수백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순국하고 말았다. 병든 몸을 이끌고 출전한 부친을 모시고 항전하던 아들 규대도 홍주성전투에서 부친과 함께 전사하였다.
     정부는 홍주성전투에서 일제의 침략에 항거한 채광묵?채규대 부자 의병에게 각각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과 1992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